일제강점기 창씨개명, 이름까지 빼앗긴 민족의 아픈 기억
창씨개명(創氏改名)은 일제강점기 말기, 조선인의 성(姓)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식민지 동화정책의 핵심 수단이었습니다.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닌, 민족 정체성과 문화, 정신까지 말살하려 한 제도적 폭력이었으며, 한국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대표적인 강제 동화정책입니다.
이번 글에서는 창씨개명이 시행된 정확한 시기, 정책 배경, 실시 방식, 조선인의 반응,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알려드립니다.
창씨개명 시행 시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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법령 공포일: 1939년 11월 10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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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행 시작일: 1940년 2월 11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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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씨개명 기간: 1940년 2월 ~ 1940년 8월 10일까지 (6개월 간)
※ 이후에도 강제 및 자발적(?) 개명은 지속됨
창씨개명은 1939년 11월, 일본 내무성이 발표한 ‘조선민사령 제19호 - 창씨에 관한 건(創氏ニ関スル件)’을 통해 공식화되었으며, 1940년 2월 11일 일본 국경절인 ‘기념일(기원절, 建国記念日)’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개명이 시작되었습니다.
창씨개명의 의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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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씨(創氏): 기존의 조선 성(姓)을 버리고, 일본식 씨(氏)를 새로 만드는 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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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명(改名): 이름 자체를 일본식으로 변경하는 것
※ 두 제도는 별개지만 함께 추진되어, 일반적으로 ‘창씨개명’이라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사용됨
제도의 배경과 목적
항목 | 내용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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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경 | 1930년대 말 전쟁(중일전쟁~태평양전쟁) 격화 속 식민 통치 강화를 위한 일본화 정책 가속화 |
목적 | 조선인을 일본인화(內鮮一體), 민족 정체성 말살, 국민총동원 체제 구축 |
정치적 의도 | 성씨 제도를 개편하여 일본식 가족제도(가부장제)를 이식 |
군사적 필요 | 전쟁 동원에 조선인을 ‘일본 국민’으로 명목상 동화시켜 징병·징용을 정당화하기 위함 |
창씨개명의 방식과 절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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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씨개명은 자발적 신청 형식을 띠었으나, 실제로는 공무원, 교사, 학생, 회사원 등은 대부분 ‘반강제’적 상황에 놓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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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족단위로 창씨를 신청하도록 했고, 신청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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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정 기간 내에 신청하지 않으면 ‘창씨미이행자’로 취급되어 취업, 진학, 공공기관 이용에 제한
창씨개명 예시
구분 | 원래 이름 | 창씨개명 이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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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 | 김(金) | 가네무라(金村), 가네다(金田) 등 |
이름 | 철수 | 데츠오(てつお), 데츠지로(てつじろう) 등 |
창씨의 경우, 성(姓)과 씨(氏)를 구분하여, 기존 조선인의 성을 일본식 씨(氏)로 ‘창설(創氏)’해야 했습니다. 이름도 일본 발음과 의미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.
조선인의 반응
1. 반발과 저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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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 지도자 및 지식인 중심으로 강한 비판 제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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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부는 신청 거부, 또는 창씨 대신 기존 성을 일본식 발음으로만 표기하는 방식 채택 (예: 김 → 키무라)
2. 불가피한 순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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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부분의 일반 국민은 생계 문제, 교육, 취업 등 실질적 불이익 때문에 신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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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히 공무원, 교사, 학생, 군인 가족 등은 강제에 가까운 상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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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강제는 아니었다”는 일본의 주장은 사실상 ‘형식적 자발성’에 불과
창씨개명 등록 현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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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씨 신청 가구 수: 약 80% 이상이 창씨 등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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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체 인구 중 창씨개명 비율: 약 96% 이상
이는 사실상 전 국민이 이름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었습니다.
해방 이후의 상황
창씨개명 철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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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5년 광복 이후, 조선총독부 폐지와 함께 창씨개명 제도도 자동 폐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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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부분의 조선인은 본래 성명으로 복귀
그러나 일부는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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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부 고위층 및 친일 인사들은 창씨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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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방 이후에도 행정 혼선, 주민등록, 호적 문제 등 혼란 발생
창씨개명의 현재적 의미
측면 | 내용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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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 정체성 침해 |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닌, 정체성과 역사의 상징 |
식민통치의 상징 | 가장 강력한 일본화 정책, 문화 말살의 대표 사례 |
역사 교육의 중요성 | 후대에 기억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역사적 경고 |
역사 왜곡 대응 | 일본 극우 세력은 “강제가 아니다” 주장 → 이에 대한 진실 알리기 필요 |
요약: 창씨개명은 언제, 어떻게 일어났나?
항목 | 내용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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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포일 | 1939년 11월 10일 |
시행일 | 1940년 2월 11일 |
종료일 | 1940년 8월 10일 (1차 마감), 이후 자발적(?) 개명 계속 |
강제 여부 | 명목상 자발적 → 실제는 강제에 가까운 분위기 |
창씨 비율 | 약 96% 이상 |
주요 목적 | 민족 말살, 동화 정책, 전쟁 동원 합리화 |
역사적 교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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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은 정체성과 존재를 부정당한 것과 같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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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씨개명은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닌, 식민지 민족에 대한 문화적 폭력이었으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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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사회는 이를 기억하고, 교육하고, 경계함으로써
국가의 주권, 개인의 존엄, 문화의 독립성을 지켜야 합니다.
창씨개명은 단순한 과거의 일이 아니라, ‘우리 이름의 의미’를 되새기게 하는 역사입니다.